
About Seijun Suzuki
본명: Seitaro Suzuki
필명: Seitaro Suzuki
2001년 <피스톨 오페라>로 베니스 영화제를 술렁거리게 만들었던 일본 영화의 거장 스즈키 세이준(1923∼ ) 감독은 오시마 나기사와 더불어 일본 누벨 바그를 이끈 장본인이다. 그는 관습적인 영화 스타일과 진부한 내러티브를 파괴한 급진적인 영화 감독으로 사무엘 풀러, 장 뤽 고다르, 로버트 알드리치에 근접한 영화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시스템 바깥에서 영화를 만들었다기보다는, 메이저 영화사인 닛카츠(日活)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세이준 스타일'을 만들어내며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192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스즈키 세이준은 격변기 일본에서 서구의 모던한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1943년 일본 제국군대에 입대해 대만과 필리핀에서 잔혹한 전쟁의 참화를 경험한다. 1946년 일본에 돌아온 후 카마쿠라 영화 아카데미에 입학, 1948년에는 쇼치쿠(松竹) 영화사와 조감독 계약을 맺었고, 1954년 닛카츠 영화사로 옮겨 조감독 생활을 시작한다. 1958년 범죄 영화인 <지하세계의 미녀>로 데뷔한 스즈키 세이준은 이어 60년대 <탐정사무소 23>, <야수의 청춘>, <도쿄 방랑자> 등에서 혁신적인 야쿠자 영화들을 선보이며 갱 영화, 야쿠자 영화, 뮤지컬, 코미디를 가로지르며 장르의 관습성을 파괴하는 '스타일의 혁신'을 만들어낸다.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에 담긴 폭력과 코미디, 블랙 유머는 독특한 '세이준 스타일'을 만들어냈고, 이 영화들은 당시 학생들과 지식인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내기도 했다.
불가사의한 영화 공간으로 빨려드는 듯한 그의 대표적인 걸작 <살인의 낙인>(1967)은 한번 보면 결코 잊기 힘든 걸작이지만, 개봉 당시 너무나 독특한 스타일, 실험적인 영상,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 전개 등이 화근이 되어 닛카츠 사장으로부터 "영문도 모를 영화를 만드는 녀석 따위는 필요 없어"라는 분노를 자아냈고, 이 때문에 스즈키 세이준은 영화사에서 해고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분노한 스즈키 세이준의 팬들은 자발적으로 '스즈키 세이준 공동투쟁 위원회(共鬪會議)"를 결성해 메이저 스튜디오와 싸움을 전개했고, 이것은 일본 영화사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을 발전, 결국 재판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재판에서는 승소했으나 스즈키 세이준은 일본 영화계에서 추방되어, 그 후 10년 간 영화를 만들 수 없었다. <살인의 낙인>은 이후 왕가위, 아오야마 신지, 짐 자무시, 타란티노 등의 영화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짐 자무시는 이 영화를 토대로 <고스트 독>을 만들기도 했다.
<살인의 낙인>이후 블랙리스트로 찍힌 스즈키 세이준은 70년대에 주로 텔레비전에서 작업했고, 책을 쓰기도 했다. 1977년 <슬픈 가을 이야기>로 영화계로 돌아와 1980년 '다이쇼 낭만 삼부작'의 첫 작품 <지고이네르바이젠>으로 베를린 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고, 이어 <아지랑이좌>와 <유메지>에서 1920년대 다이쇼 시대의 데카당스와 낭만주의를 빼어나게 표현해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2001년 신작 <피스톨 오페라>(일본제목, <속·살인의 낙인, 피스톨 오페라>)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특별 상영되었으며, 지난 해 일본에서 개최된 '스즈키 세이준 회고전'과 더불어 대단한 관객을 동원했고, 특히 젊은 층으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필모그라피 filmography
1956년『항구의 건배, 승리를 나의 손에 港の乾杯 勝利をわが手に』
『범망은 노래한다, 바다의 순정 帆綱は唄う 海の純情』
『악마의 거리 惡魔の街』
1957년『부초의 여관 浮草の宿』
『8시간의 공포 8時間の恐怖』
『나부와 권총 裸女と拳銃』
1958년『암흑가의 미녀 暗黑街の美女』
『돌아오지 않는 봄 踏みはずした春』
『젊은 유방 靑い乳房』
『그림자 없는 소리 影なき聲』
1959년『러브레터 らぶれたあ』
『암흑의 여권 暗黑の旅券』
『벌거벗은 연령 素っ裸の年齡』
1960년『그 호송차를 노려라 その護送車を狙え』
『짐승의 수면 けものの眠り』
『밀항 O라인 密航Oライン』
『모두가 미쳤어 すべてが狂ってる』
『뒈져라, 미련한 연대 くたばれ愚連隊』
1961년『도쿄기사대 東京騎士隊』
『못 말리는 대장 無鐵砲大將』
『산탄총 사내 散彈銃の男』
『고개를 넘는 젊은 바람 峠を渡る若い風』
『해협, 피로 물들고 海峽, 血に染めて』
『백만불을 두드려라 百万弗を叩き出せ』
1962년『하이틴 야쿠자 ハイティ―ンやくざ』
『내게 건 녀석들 俺に賭けた奴ら』
1963년『탐정사무소 23, 죽어라 악당들 探偵事務所23 くたばれ惡党ども』
『야수의 청춘 野獸の靑春』
『아쿠타로 惡太郞』
『간토 방랑자 關東無宿』
1964년『꽃과 성난 파도 花と怒濤』
『육체의 문 肉体の門』
『우리들의 피가 용서 않는다 俺たちの血が許さない』
1965년『위안부 이야기 春婦伝』
『아쿠타로전, 악한 별 아래에서도 惡太郞伝 惡い星の下でも』
『문신일대 刺靑一代』
1966년『가와치에서 온 카르멘 河內カルメン』
『도쿄 방랑자 東京流れ者』
『겐카 엘레지 けんかえれじい』
1967년『살인의 낙인 殺しの烙印』
1977년『슬픈 가을 이야기 悲愁物語』
1980년『지고이네르바이젠 ツィゴイネルワイゼン』
1981년『아지랑이좌 陽炎座』
1985년『카포네 대성통곡하다 カポネ大いに泣く』
1991년『유메지 夢二』
1993년『결혼 結婚』중 한편
2001년『피스톨 오페라 ピストルオペラ』
필명: Seitaro Suzuki
2001년 <피스톨 오페라>로 베니스 영화제를 술렁거리게 만들었던 일본 영화의 거장 스즈키 세이준(1923∼ ) 감독은 오시마 나기사와 더불어 일본 누벨 바그를 이끈 장본인이다. 그는 관습적인 영화 스타일과 진부한 내러티브를 파괴한 급진적인 영화 감독으로 사무엘 풀러, 장 뤽 고다르, 로버트 알드리치에 근접한 영화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시스템 바깥에서 영화를 만들었다기보다는, 메이저 영화사인 닛카츠(日活)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세이준 스타일'을 만들어내며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192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스즈키 세이준은 격변기 일본에서 서구의 모던한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1943년 일본 제국군대에 입대해 대만과 필리핀에서 잔혹한 전쟁의 참화를 경험한다. 1946년 일본에 돌아온 후 카마쿠라 영화 아카데미에 입학, 1948년에는 쇼치쿠(松竹) 영화사와 조감독 계약을 맺었고, 1954년 닛카츠 영화사로 옮겨 조감독 생활을 시작한다. 1958년 범죄 영화인 <지하세계의 미녀>로 데뷔한 스즈키 세이준은 이어 60년대 <탐정사무소 23>, <야수의 청춘>, <도쿄 방랑자> 등에서 혁신적인 야쿠자 영화들을 선보이며 갱 영화, 야쿠자 영화, 뮤지컬, 코미디를 가로지르며 장르의 관습성을 파괴하는 '스타일의 혁신'을 만들어낸다.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에 담긴 폭력과 코미디, 블랙 유머는 독특한 '세이준 스타일'을 만들어냈고, 이 영화들은 당시 학생들과 지식인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내기도 했다.
불가사의한 영화 공간으로 빨려드는 듯한 그의 대표적인 걸작 <살인의 낙인>(1967)은 한번 보면 결코 잊기 힘든 걸작이지만, 개봉 당시 너무나 독특한 스타일, 실험적인 영상,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 전개 등이 화근이 되어 닛카츠 사장으로부터 "영문도 모를 영화를 만드는 녀석 따위는 필요 없어"라는 분노를 자아냈고, 이 때문에 스즈키 세이준은 영화사에서 해고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분노한 스즈키 세이준의 팬들은 자발적으로 '스즈키 세이준 공동투쟁 위원회(共鬪會議)"를 결성해 메이저 스튜디오와 싸움을 전개했고, 이것은 일본 영화사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을 발전, 결국 재판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재판에서는 승소했으나 스즈키 세이준은 일본 영화계에서 추방되어, 그 후 10년 간 영화를 만들 수 없었다. <살인의 낙인>은 이후 왕가위, 아오야마 신지, 짐 자무시, 타란티노 등의 영화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짐 자무시는 이 영화를 토대로 <고스트 독>을 만들기도 했다.
<살인의 낙인>이후 블랙리스트로 찍힌 스즈키 세이준은 70년대에 주로 텔레비전에서 작업했고, 책을 쓰기도 했다. 1977년 <슬픈 가을 이야기>로 영화계로 돌아와 1980년 '다이쇼 낭만 삼부작'의 첫 작품 <지고이네르바이젠>으로 베를린 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고, 이어 <아지랑이좌>와 <유메지>에서 1920년대 다이쇼 시대의 데카당스와 낭만주의를 빼어나게 표현해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2001년 신작 <피스톨 오페라>(일본제목, <속·살인의 낙인, 피스톨 오페라>)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특별 상영되었으며, 지난 해 일본에서 개최된 '스즈키 세이준 회고전'과 더불어 대단한 관객을 동원했고, 특히 젊은 층으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필모그라피 filmography
1956년『항구의 건배, 승리를 나의 손에 港の乾杯 勝利をわが手に』
『범망은 노래한다, 바다의 순정 帆綱は唄う 海の純情』
『악마의 거리 惡魔の街』
1957년『부초의 여관 浮草の宿』
『8시간의 공포 8時間の恐怖』
『나부와 권총 裸女と拳銃』
1958년『암흑가의 미녀 暗黑街の美女』
『돌아오지 않는 봄 踏みはずした春』
『젊은 유방 靑い乳房』
『그림자 없는 소리 影なき聲』
1959년『러브레터 らぶれたあ』
『암흑의 여권 暗黑の旅券』
『벌거벗은 연령 素っ裸の年齡』
1960년『그 호송차를 노려라 その護送車を狙え』
『짐승의 수면 けものの眠り』
『밀항 O라인 密航Oライン』
『모두가 미쳤어 すべてが狂ってる』
『뒈져라, 미련한 연대 くたばれ愚連隊』
1961년『도쿄기사대 東京騎士隊』
『못 말리는 대장 無鐵砲大將』
『산탄총 사내 散彈銃の男』
『고개를 넘는 젊은 바람 峠を渡る若い風』
『해협, 피로 물들고 海峽, 血に染めて』
『백만불을 두드려라 百万弗を叩き出せ』
1962년『하이틴 야쿠자 ハイティ―ンやくざ』
『내게 건 녀석들 俺に賭けた奴ら』
1963년『탐정사무소 23, 죽어라 악당들 探偵事務所23 くたばれ惡党ども』
『야수의 청춘 野獸の靑春』
『아쿠타로 惡太郞』
『간토 방랑자 關東無宿』
1964년『꽃과 성난 파도 花と怒濤』
『육체의 문 肉体の門』
『우리들의 피가 용서 않는다 俺たちの血が許さない』
1965년『위안부 이야기 春婦伝』
『아쿠타로전, 악한 별 아래에서도 惡太郞伝 惡い星の下でも』
『문신일대 刺靑一代』
1966년『가와치에서 온 카르멘 河內カルメン』
『도쿄 방랑자 東京流れ者』
『겐카 엘레지 けんかえれじい』
1967년『살인의 낙인 殺しの烙印』
1977년『슬픈 가을 이야기 悲愁物語』
1980년『지고이네르바이젠 ツィゴイネルワイゼン』
1981년『아지랑이좌 陽炎座』
1985년『카포네 대성통곡하다 カポネ大いに泣く』
1991년『유메지 夢二』
1993년『결혼 結婚』중 한편
2001년『피스톨 오페라 ピストルオペラ』
Filmography
![]() Milocrorze - a Love Story (2011) | ![]() Princess Raccoon (2005) | ![]() Pistol Opera (2001) |